'비키니의 계절'이라는 한 여름의 클라이막스.
8월의 해변은 위의 수식어와는 달리 태풍이 몰려온다는 기상예보 덕분에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다행히 와야할 태풍은 오지 않았기에 적당히 땀을 흘리고, 적당히 태닝을 하던- 모든 것이 적당했던 여름 휴가.

그렇게 적당했던 휴가의 어느 적당한 시점에서 B를 만났다.

처음 본 그녀는 짧은 데님 스커트 위에 검정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콧잔등에 땀이 송글 맺혀있었다.
팔과 다리가 길어서 작아보이지 않는 작은 키.  웨이브진 긴 머리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앞머리는 내게 성가시게 느껴졌지만-
그 뒤의 웃는 표정은 성가신 앞머리를 상쇄시킬만큼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휴가지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B는 이전에 알고 있던 모습과 사뭇 다른 formal한 느낌으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법도 했었으나, 그녀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 덕분에 B라는 것을 쉽게 확신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고양이 마냥 '흐응'하는 소리를 듣는 것과,
햇볕에 간지럽혀진 눈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찡그리며 웃는 B의 얼굴을 질리도록 보는 것이
날씨 좋은 8월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아니, 단순한 즐거움이었다기 보다는-
그간 평온히 잊고 지냈던 심장의 위치를  번거롭게나마 확인할 수 있던 오래간만의 경험이었을까.
어느새 그 '경험'을 넘어서 이젠 새로운 '용기'를 다시 내어볼까-하는 생각에 이르고 있었다.


sky in August


하지만, 오래지 않아 지나가버린- 구름같던 8월이었다.

바람이 부는 9월이 되자, B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계절이 바뀌자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아무런 징후도 없었고 '친구와 저녁먹고 전화할게' 라는-
마지막 그녀의 밝은 목소리가 아직 뇌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B의 존재가 먼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내가 앞뒤 내용이 안맞는 꿈이라도 꾸었던 것 처럼.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퇴근하는 길, 손가락ㅡ이젠 더이상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지 않는ㅡ마디 사이로, 같은 모습의 시원한 바람이 부는 9월이
또 다시 찾아왔다.  아침 저녁으로 부쩍 시원해진 탓에 긴팔 셔츠를 입은채로, 회사 선배와 오코노미야키에 아사히를 한잔하고
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하늘색 실크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은 배가 홀쭉한 날씬한 여성이 내 옆에 서있다. 
그 여성이 통화를 하다가 '있다가 집에 가서 전화할게'라는 말로 통화를 맺는다.


그녀는 누군가의 또 다른 8월이 될 것인가.

2009/09/13 00:02 2009/09/13 00:02
Posted by 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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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9/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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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ㅃ^
      2009/09/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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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그래? 날씨 풀리면 친구들 모아서 저녁이나 먹자
  2. 비밀방문자
    2009/09/1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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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ㅃ^
      2009/09/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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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B :)
  3. 비밀방문자
    2009/09/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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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ㅃ^
      2009/09/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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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버거 덕분에 Fiction이 되었습니다 :)
  4. 비밀방문자
    2009/10/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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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ㅃ^
      2009/10/0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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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w- 한국에 온건가?
      추석끝나고 만날 수 있게, 미리 msg 보내주어요.
      MERRY CHOO-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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