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 ㅃ^
2002/08/12 19:23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정말 신기한 일을 많이 겪는다.

아니- 그보단 그런 신기한 일들을 겪게되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꽤 있다는말이
더 정확할것 같다. 내 경우엔 저번 겨울에 겪은 일이 그렇다.

그저그런 하루였다.
똑같이 늦잠을 잤었고, 늦게 일어난다는 똑같은 엄마의 잔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아침.
뒤늦은 아침식사에 점심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늘 그렇듯이 컴퓨터를 켜고
밤새 온 이메일은 없을까 하고 확인하던 중에- 못보던 이메일이 있었다.

“세라?”

순간 뭔가 묵직한것이 내 머리를 세게 주무르고 도망가는 듯했다.
생각 나듯 생각나듯 망설이던 나의 뇌가 그녀의 존재를 일깨운건
멀지 않았던 저녁식사때였다. (난 식사시간이면 뇌의 긴장이 풀리나 보다.)

보시다시피 특이한 이름이다. 세라. 성까지 이야기를 해버린다면
이글을 읽는 누군가는 반드시 Daum에 가서 사람검색을 해보리라 짐작하고
성은 접어두기로 하자.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특이하다고 본다. (그만 물어보라니깐요)

내가 대학교 1학년때에는 ‘아이러브스쿨’이란 인터넷 사이트가 화제였던 적이 있다.
요약을 하자면 예전의 그리웠던-뭐 원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경우도 있겠지만-초등,중등,
고등학교 친구들을 손쉽게 찾아주는 그런 사이트였다.
몇몇 유용한 커뮤니티도 있길래 가입을 해두던 터라, 맘만먹으면 어느누구의 정보라도,
내 정보역시 그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낼수 있었다. 참 인터랙티브한 세상입니다.

[세환이에게] 라는 제목으로 도착한 이메일엔, '반갑다'는 인사로 시작되어
'반가웠다'는 말로 끝맺음 되어 있었다. 편지를 읽어보니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같은반이었다.
아-맞다. 그러고 보니 슬며시 생각이 나는군. 그게 1학년때구나-

그녀와 나는 1학년때 같은반이었고, 그 전에 이미 유치원에서 함께 했던 사이란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우리동네 놀이터에
곧 잘와서 나와 같이 많이 놀았다고 하더군요.
또한 우리와 함께 놀았던 다른 남자 친구들의 이름을 은근슬쩍 대는걸보니
친형제성을 띤 여자애임이 틀림이 없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와는1학년 1학기때 같은반을 하고
그녀가 2학기때 전학을 간게 인연의 전부다. 그 이후에 편지를 쓴것도 없고,
이 이메일을 읽어보기전까지 십여년을 그녀생각없이 잘만 지내던 사람이 바로 접니다.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그녀가 왜 굳이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 '세환씨'를 남모르게 10여년을 떠올리면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인것이다 (죄송합니다)

뒤늦게 답장을 보내었다. 마찬가지로 '편지받고서 반가웠다'로 시작해서
'반가웠었다'로 마무리되는. 그리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몰라도
내 휴대전화번호를 넣었다 (참 대담하시군요).
물론 그녀도 답례로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었지만.

상황은 여차저차해서 ‘뭐 굳이 이런…’ 에서, ‘한번 만나볼까’ 라는 단계로 급진전했다.
전화통화를 몇번했었고, 이메일도 몇번 더 보냈고.
하지만, 그녀의 이름밖에 모르는 나로선 딱히 얼굴이 기억나는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생각나는 신체 부위라든가 말투도 없었다.
단지 그쪽에서 나를 알고 있었고, 그러니깐 우린 친했었나보군- 하는정도.
원래 사회는 인터랙티브한 곳이니깐.

겨울이라 낮에 만나기로 했다. 2시쯤에 coex에서. 어떻게 알아볼수 있을까.
난 그 흔한 채팅도 번개도 해본적이 없는데-정말이라구요.
그렇게 긴장하면서 쓸데없이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전화가 왔다.

“어디야 지금?”
“응. 서점.”
“도착한거야 벌써?”
‘응. 뭐살게 있어서.”
“나도 거의 도착했거든. 금방갈게.”

그렇게 대답한탓에 애꿎은 드로잉북을 한권 사서 손에들고 약속장소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서있는 여자들은 잔뜩있는데 그중에 누가 세라인지를 찾는것은
여간힘든일이 아니다. 차라리 복제 원숭이를 맞추는 쪽이 낫죠.

“야. 너 많이 변했다.”

어라. 누구지.
날 알아보는 사람이니깐 세라는 맞는것 같은데-
첫마디가 ‘너 많이 변했다.’ 라니- 그러면서 나를 어떻게 알아본걸까.

한마디로 딱잘라서 첨보는 여자애였다.
하긴 15년 정도가 흘렀으니 아무리 기억이 또렷했더라도 못알아보는건 당연한 일이다.

긴 검정 생머리를 레이어드를 해서 어깨까지 흘렀고,
눈가에는 약간의 화이트 펄이 자리잡고 있었다.
검정니트에 검정 9부바지, 또다시 검정코트, 빨간색 토드백이 유난히 눈에 띈다.
현대무용을 전공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몸에 탄력이 붙어 있었고,
게다가 키까지 큰편이라 느낌이 좋았다.
내 주위에는 왜 이런 멋진 여자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그날 즐거운 시간을 갖게되어 정말 기분은 좋았지만,
지금은 연락이 흐지부지 되어 뭐라 말할처지는 못된다. 단지 서로 안맞는것 같다는게
내 사견이다. 그녀쪽도 이미 그걸 감지한 모양이고.
원래 멋진 사람들끼리는 잘 안어울리잖아. (자꾸 죄송합니다)

뭐 그리 신기한일이냐고 따지고 들면 뭐라 할말이 없이
‘그런가봐요. 잘못했습니다.’라고 한발 물러서겠지만, 현재의 건조한 삶을 사는 내겐
충분히 자극적이었고 신기한 일이었다. 아니면- 그녀가 자극적이었다든지.


ㅃ^
2002/08/12 19:23 2002/08/12 19:23
Posted by 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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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ㅃ^
    2006/10/2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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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끄적였던 글들을 새 집으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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