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 스페인’이라는 문구가 TV상단에 박혀있었다. '한국'이 아니었다.
무슨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공중파 방송 3사가 나란히 ‘대한민국’ 으로 표기해놓았다.
한국으로 하든 대한민국으로 하든 TV에 부하가 더 걸린다거나,
수신료가 올라가는건 아니지만, 단 두글자의 증가로 인해서 경기결과가 달라졌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을것 같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애국가를 제대로 부른적보다는
적당히 립싱크를 했던적이 많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사실은 안부끄러워요)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것이다. 차라리 애정이 가지 않는 SM의 △△그룹의 음악에는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거리겠다만.
내가 애국가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흐릿했던건
우리나라의 찬란하다는 역사와는 무관한 것이다. 단일 민족이고, 건국이래 무수한
외침을 당해왔지만 꿋꿋히 버텨내고,평화를 사랑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극복해낸 민족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역사로 인식은 하겠다만,
안타깝게 와닿지는 않는군요. 교과서일 뿐이다.
이건 분명 내 잘못이 아니다. 왜냐면 난 80년 생이니깐.
‘어이, 8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당신같은 줄 알아?’ 아뇨, 아마 아닐겁니다.
아니길 바래요. 내말은 80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 전에 일어났던 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그와 관련해서 왈가왈부하지말아 달라는게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건,그 이후에 국가에대한 자부심을 가질만한 껀덕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80년 이후 이래로.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땐 저희가(혹은 제가)
너무 어렸다구요. 초등학교 2학년생은 모국에대한 자긍심보단, 새로산 크레파스에
대한 자긍심이 더 클때가 아닙니까.
근데 지난 월드컵이 있던 6월 한달간은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대회가 시작되면서 자국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세계각지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홈팀이니까 그들보다 더 강력한 응원을 당연히 기대했었다.
축구 실력이 좀 밀린다면 응원으로라도 제압하는 수 밖에. 여지껏 개최국이 예선
탈락한 적은 없었으니깐. 혹시 그렇게 된다면- 와따시와 韓國人데와 아리마셍.
간바레 니뽄!(전 한국인이 아니랍니다. 일본 화이팅!)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의 응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배수의 진’이었다. 단순히 월드컵 축구여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적인 기대치에 준한것이었다. 사회 곳곳에서는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매번 들이 밀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언가에 기대를 하는것도 축구가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다.
6월4일에 있었던 폴란드와의 첫경기를 시작으로, 예선 2승1무를 기록하여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을때, 나는 정말 엑스터시를 맛보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사람들이
경기가 거듭될수록 더욱더 열광을하고 하나로 응집되는 결속력을 보였다.
그 결속력이란 레드 컴플렉스와 금기의 파괴라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결속력이라
더 의미가 컸고, 그리고 그 힘의 중심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있었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후 분열했던 미 대륙을 하나로 응집시켰던 것이 ‘성조기’라고
불리우는 헝겊조각이었다면, 근대화와 민주화 이후 이루 말할 수 없는 문제점이
산발해 있는 (일일이 열거한다면 20권짜리 장편 소설이 되겠죠)우리나라를
일시적으로나마 결집시킨것엔 고작 4음절이 필요했다. 위대한 사상가도 아니었고,
DJ정부도 아니었고, 코리안 특급의 연이은 호투도 아니었다.
게다가 의미없는 헝겊따위와는 비교도 하지말라.
‘대한민국’으로 하나가 되보았다는 경험은 우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산과
무기가 되었다. 그 의미가 있는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능력과 역량을 한곳으로
집약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그런면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축제’라는 개념을 나 같이 젊은 삶들과 청소년들이 몸으로 느끼게 되었고,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 세대간의 간격이 일시적이나마 좁아졌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웃을수 있었다는것이 감사하다.
P.S ;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한국대 이탈리아의 16강 경기는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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