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귀하

 | ㅃ^
2002/08/15 17:23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이었나.
‘대한민국 대 스페인’이라는 문구가 TV상단에 박혀있었다.  '한국'이 아니었다.

무슨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공중파 방송 3사가 나란히 ‘대한민국’ 으로 표기해놓았다.
한국으로 하든 대한민국으로 하든 TV에 부하가 더 걸린다거나,
수신료가 올라가는건 아니지만, 단 두글자의 증가로 인해서 경기결과가 달라졌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을것 같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애국가를 제대로 부른적보다는
적당히 립싱크를 했던적이 많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사실은 안부끄러워요)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것이다.  차라리 애정이 가지 않는 SM의 △△그룹의 음악에는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거리겠다만.

내가 애국가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흐릿했던건
우리나라의 찬란하다는 역사와는 무관한 것이다.  단일 민족이고, 건국이래 무수한
외침을 당해왔지만 꿋꿋히 버텨내고,평화를 사랑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암울했던
일제시대를 극복해낸 민족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역사로 인식은 하겠다만,
안타깝게 와닿지는 않는군요.  교과서일 뿐이다.


이건 분명 내 잘못이 아니다.  왜냐면 난 80년 생이니깐.


‘어이, 80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당신같은 줄 알아?’  아뇨, 아마 아닐겁니다.
아니길 바래요.  내말은 80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 전에 일어났던 일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그와 관련해서 왈가왈부하지말아 달라는게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건,그 이후에 국가에대한 자부심을 가질만한 껀덕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80년 이후 이래로.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땐 저희가(혹은 제가)
너무 어렸다구요.  초등학교 2학년생은 모국에대한 자긍심보단, 새로산 크레파스에
대한 자긍심이 더 클때가 아닙니까.


근데 지난 월드컵이 있던 6월 한달간은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대회가 시작되면서 자국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세계각지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홈팀이니까 그들보다 더 강력한 응원을 당연히 기대했었다.
축구 실력이 좀 밀린다면 응원으로라도 제압하는 수 밖에.  여지껏 개최국이 예선
탈락한 적은 없었으니깐.  혹시 그렇게 된다면- 와따시와 韓國人데와 아리마셍. 
간바레 니뽄!(전 한국인이 아니랍니다. 일본 화이팅!)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의 응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배수의 진’이었다.  단순히 월드컵 축구여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적인 기대치에 준한것이었다.  사회 곳곳에서는 기대이하의
성적표를 매번 들이 밀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언가에 기대를 하는것도 축구가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다.

6월4일에 있었던 폴란드와의 첫경기를 시작으로, 예선 2승1무를 기록하여 조1위로
16강에 진출했을때, 나는 정말 엑스터시를 맛보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사람들이
경기가 거듭될수록 더욱더 열광을하고 하나로 응집되는 결속력을 보였다.
그 결속력이란 레드 컴플렉스와 금기의 파괴라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결속력이라
더 의미가 컸고, 그리고 그 힘의 중심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있었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후 분열했던 미 대륙을 하나로 응집시켰던 것이 ‘성조기’라고
불리우는 헝겊조각이었다면, 근대화와 민주화 이후 이루 말할 수 없는 문제점이
산발해 있는 (일일이 열거한다면 20권짜리 장편 소설이 되겠죠)우리나라를
일시적으로나마 결집시킨것엔 고작 4음절이 필요했다.  위대한 사상가도 아니었고,
DJ정부도 아니었고, 코리안 특급의 연이은 호투도 아니었다. 
게다가 의미없는 헝겊따위와는 비교도 하지말라.

‘대한민국’으로 하나가 되보았다는 경험은 우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산과
무기가 되었다.  그 의미가 있는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능력과 역량을 한곳으로
집약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그런면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축제’라는 개념을 나 같이 젊은 삶들과 청소년들이 몸으로 느끼게 되었고,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 세대간의 간격이 일시적이나마 좁아졌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웃을수 있었다는것이 감사하다.



P.S ;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한국대 이탈리아의 16강 경기는 정말 최고였다.



ㅃ^
2002/08/15 17:23 2002/08/15 17:23
Posted by ㅃ^

말괄량이 삐삐

 | ㅃ^
2002/08/13 19:49

정확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내겐 좋아하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으니, 이름을 밝힐거라곤 기대하진 마세요.
그냥 그저그런 애들보다는 분명 괜찮은 아이였으니깐. 나중에 언급할 일이 있겠죠.

그 괜찮은 아이는 우리반을 포함한 전교의 많은 팬들을 이미 확보한 여자아이였다.
공부도 잘했고, 볼팬도 잘 빌려주었고, 아침마다 숙제도 잘 보여주었던 친구였다.

암튼, 난 원래 친구들과 운동하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활기넘치는 중학생이었다. 이성에
눈이 뜨이지도 않았고(지금도 눈감고 있다) 항상 학과 공부와 독서, 학술회, 토론과는
좀 거리가 있던 중학생.  점심시간만 되면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했었고, 방과후에도
역시 축구를 열심히 했다.  땀에 흠뻑젖어서 학원에 갈때도 있었고, 때론 승부차기까지
이어져 학원에 불가피하게 결석할때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한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니깐, 축구는 단지 TV속의 공놀이가 되어버렸다.
뭐 다들 느껴본 감정이겠지만, 계속 같이있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그런게 당연한게 아닌가.

그 애의 집에 가끔 용기를 내어 전화를 하면 어머니가 받던지 아버지가 받았다.
언니도 있다지만 언니는 대학생이라 밤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 여튼 그녀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게되면 쓸대없이 목소리가 긴장되어 문장의 앞뒤가 맞지않는 경우가 있었다.
머릿속에서 엄청난 경우의 수들이 밀려와 결국엔 ‘No Access’ 상태가 될때까지.
그렇게 되면 대화의 물꼬는 그쪽 부모님들이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중, 잡지를 뒤적이다 삐삐라는 제품의 광고를 보게되었다. 처음엔 그것이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유용함을 던져주는지 몰랐지만, 분명히 뭔가 특별하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쓰는걸로 알았다.

근데, 내 친구중 한 녀석이 며칠후 학교로 삐삐라는 물건을 가져왔다. 간단히 말해서
집에 없어서 연락을 못받을때 음성메세지나 호출(그때 당시엔 ‘호출한다’라는 개념이
정확하지 않았다)을 할때 쓰인단다.

어라. 이 녀석은 나랑 오락실도 잘 다니고 게임 소프트웨어도 사러 자주 돌아다니던 녀석인데,
이런 특별한 물건을 갖고 있다니.


별것 아니네. 그냥 사면 되는구나. 얼마지?

그리고 그녀의 넌지시 ‘삐삐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던지는 한마디에 방과후에
친구와 용산행 지하철을 탔다.  그당시 82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지금도 내겐 거금이다)
모토롤라의 '티메로'라는 삐삐를 샀는데 그날밤은 정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는 그녀의 집에 무턱대고 전화를 걸 일이 없었으니깐 뇌가 마비되는 걱정은
덜게되었다.  먼저 삐삐로 연락을 하고 전화를 하면 되니깐. 
전화가 안된다면 음성으로 남기면 되니깐.

하지만, 원래 문명이란것이 한가지의 발전을 이룩하면 과정중엔 의도하지 않았던
서너가지의 문제점을 파생시키듯이, 삐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적이 있었다. 먼저 만나기로 약속을 해두었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학원시간표 변경때문에 내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부재중이라 할 수 없이 삐삐를 쳤단다.
하지만, 그 나는 삐삐가 수신이 되질 않아 한 2시간여를 기다린적이 있었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지 아마?

그리고, 삐삐란 놈이 결국엔 전화가 필요한것이라, 길거리의 모든 공중전화기에는
사람들이 끊길날이 없었다.  ‘잘 지내지? 난 잘지내’ 류의 아주 쓸대없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10여분씩을 줄서서 기다리는 것이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난 결국 호출 이외에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삐삐가 생겨서 좋아진것이라곤 자신이 원할때 연락을 취할수 있다는 것이다. 
발신자 편의의 서비스이다.  수신자의 편의를 요구한다면 그건 통신수단이라고 하긴
좀 뭣하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그래도 이전엔 약속을 취소하거나 연기를 할땐 너무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전화를 할지
생각을 여러번하고 수화기를 들다가- 그녀의 어머니가 받으면 다시 무중력상태로 떠오르고-
그녀가 받으면 용건은 접어두고 괜한 숙제 얘기만 하다가 끊었었는데(혹시, 저만 그랬나요).

삐삐가 있으니까 아주 간단해졌다. "미안해 오늘 못나가."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무책임해진 것이 성격탓이 아니라, 특정물건에
기인해져 버렸다는 것이 물질문명에대한 아주 약간의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 발전을 포기하진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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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라뭐라해도-
휴대전화보다는 삐삐 있을때가 더 나았었다.




ㅃ^

2002/08/13 19:49 2002/08/13 19:49
Posted by 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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